새로 산 그림책을 펼치고 아기를 무릎에 앉혔는데, 첫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아기가 책장을 마구 넘기더니 모서리를 입에 넣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자 몸을 비틀며 내려가 버리지요. 책 읽는 습관을 일찍 들여 주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이런 날이 반복되면 우리 아이는 책을 싫어하나 싶어 조급해집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그림책 읽기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주는 시간이라기보다, 책과 부모의 목소리를 즐거운 기억으로 묶어 두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아기에게 책은 먼저 만지고 넘겨 보는 물건입니다
돌 전후의 아기는 책을 읽는 대상이 아니라 탐색하는 대상으로 대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두드려 소리를 내 보고, 입에 넣어 감촉을 확인하는 것도 그 탐색의 일부입니다. 이런 모습은 책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기가 책을 알아 가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끝까지 읽히겠다는 목표를 내려놓는 편이 좋습니다. 아기가 펼친 장에서 그림 하나를 가리키며 이름을 짧게 말해 주고, 아기가 넘기고 싶어 하면 그대로 따라가 주세요. 순서가 뒤죽박죽이어도 괜찮습니다. 입에 넣는 시기라면 두꺼운 종이로 된 책인지, 모서리가 둥글어 다칠 염려가 적은지만 살펴 주면 됩니다.
짧게 끝내야 다음에 다시 책을 찾습니다
책 읽기가 잘되는 때는 대개 아기가 졸리거나 배고프지 않고 기분이 편안한 시간입니다. 목욕을 마친 뒤나 잠들기 전처럼 하루 중 비슷한 때에 책을 펼치면, 아기도 이 시간에는 책을 본다는 흐름을 조금씩 익혀 갑니다. 처음에는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만둘 때를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아기가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비틀고 무릎에서 내려가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책을 덮어 주세요. 억지로 붙잡아 한 장을 더 읽으면 그 마지막 기억이 실랑이로 남기 쉽습니다. 조금 아쉬울 때 끝내야 아기가 나중에 스스로 그 책을 다시 들고 오곤 합니다.
글자보다 목소리와 주고받는 말이 더 많은 걸 전합니다
이 시기 아기는 문장의 뜻보다 소리의 리듬과 높낮이에 먼저 반응합니다. 적힌 글을 그대로 읽기보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살려 목소리를 크게 작게 바꿔 보면 아기 눈이 책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말이 반복되는 책은 아기가 다음 소리를 기대하게 만들어 더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아기가 그림을 가리키거나 소리를 내면 그 반응을 받아 말로 이어 주세요. "멍멍이네, 멍멍이가 어디 가지?"처럼 짧게 묻고 잠깐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책 읽기는 부모와 아기가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됩니다. 같은 책을 몇 주씩 반복해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익숙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이니 조금 지겹더라도 받아 주세요.
책이 눈에 띄는 자리에 있어야 손이 갑니다
책을 높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 두면 아기가 책을 만날 기회는 부모가 꺼내 줄 때뿐입니다. 아기 눈높이의 낮은 선반이나 바구니에 표지가 보이도록 몇 권만 놓아 두면, 놀다가 스스로 책을 집어 오는 일이 생깁니다. 한꺼번에 많이 꺼내 두기보다 몇 권씩 바꿔 가며 두는 편이 아기가 한 권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이렇게 해도 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그 책이 아기에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림이 크고 단순한 책, 만지는 감촉이 다른 책으로 바꿔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책과 상관없이 눈을 잘 맞추지 않거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적거나, 또래보다 말소리가 눈에 띄게 적어 걱정된다면 책 읽기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소아과에서 상담해 보세요.
오늘 잠들기 전에는 아기가 가장 자주 만지는 책 한 권만 골라, 아기가 넘기는 대로 두세 장만 함께 보며 그림 이름을 말해 주세요. 끝까지 읽지 않아도 아기가 웃으며 한 장을 더 보고 싶어 한다면, 그날의 책 읽기는 충분히 잘된 것입니다.